왕과 사는 남자 등장인물, 후기, 역사적배경 등 관람전 기본정보 정리

왕과 사는 남자 등장인물, 후기, 역사적배경 등 관람전 기본정보 정리

2026년 2월 4일 개봉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네이버 평점 9.65점, CGV 에그지수 96%로 관객들의 압도적인 호평을 받고 있는 이 영화는 장항준 감독의 첫 정통 사극으로, 한국 영화 최초로 조선 6대 왕 단종의 유배 생활을 중점적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영화 기본정보

제목: 왕과 사는 남자

개봉일: 2026년 2월 4일

감독: 장항준

장르: 사극, 드라마

러닝타임: 약 120분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출연진 소개

왕과 사는 남자는 믿고 보는 배우들의 완벽한 조합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유해진 (엄흥도 역)

강원도 영월 산골 마을 광천골의 촌장으로, 먹고살기 힘든 마을 사람들을 위해 청령포를 유배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입니다. 2025년 영화 파묘로 천만 관객을 달성한 흥행 보증 수표 유해진은 이번 작품에서도 코믹함에서 비극까지 넘나드는 압도적인 연기를 선보입니다.

박지훈 (이홍위/단종 역)

왕위에서 쫓겨나 노산군으로 강등된 후 영월로 유배된 어린 선왕 역을 맡았습니다. 약한영웅 시리즈로 배우로서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한 박지훈은 단종 역을 위해 15kg을 감량하며 열정을 보였고, 개봉 후 다른 주연들에 밀리지 않는 높은 몰입도의 연기로 호평받고 있습니다.

유지태 (한명회 역)

계유정난을 주도하고 단종을 압박한 당대 최고의 권력자 한명회 역을 맡아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발휘합니다. 관자놀이에 테이핑을 해 매서운 눈초리를 만들고 거구의 외형으로 변신해 보는 이를 압도하는 연기를 선보입니다.

전미도 (매화 역)

단종을 보필하는 궁녀 매화 역으로 출연해 탄탄한 연기 내공을 보여줍니다.

이외에도 박지환(영월 군수), 이준혁(금성대군), 안재홍(노루골 촌장), 김민(엄흥도의 아들 태산) 등이 출연해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영화의 역사적 배경 - 1457년 계유정난 이후

왕과 사는 남자의 시대적 배경은 1457년 강원도 영월 청령포입니다. 이 시기는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권력 투쟁이 벌어진 직후였습니다.

계유정난 (1453년)

1452년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사망하면서 12세의 어린 단종이 조선 6대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1453년 10월, 숙부인 수양대군은 김종서, 황보인 등 단종을 보필하던 대신들을 제거하는 정변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바로 계유정난입니다. 이 사건으로 수양대군은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했고, 단종의 왕권은 유명무실해졌습니다.

왕위 선양과 사육신의 복위 운동 (1455-1456년)

1455년 윤6월, 수양대군의 압박으로 단종은 왕위를 선양하고 상왕으로 물러났습니다. 이듬해인 1456년, 성삼문, 박팽년 등 집현전 학사들이 단종 복위를 꾀했으나 실패했고, 이것이 바로 사육신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습니다.

영월 청령포 유배 생활 (1457년)

청령포는 삼면이 서강으로 둘러싸이고 한쪽은 가파른 절벽으로 막혀 있어 '육지 속의 외로운 섬'이라 불렸습니다. 배를 타지 않으면 출입할 수 없는 천연 감옥이었던 셈입니다. 1457년 여름, 큰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자 단종의 유배지는 영월 객사인 관풍헌으로 옮겨졌습니다.

비극적 최후 (1457년 11월)

1457년 9월, 단종의 숙부이자 세종의 여섯째 아들인 금성대군이 순흥에서 단종 복위 운동을 계획했으나 발각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책임이 단종에게까지 전가되어, 같은 해 11월 16일 사약이 내려졌습니다. 세조실록에는 단종이 스스로 목을 맸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야사에서는 금부도사가 직접 교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당시 단종의 나이는 겨우 17세였습니다.

실화와 영화의 차이점

왕과 사는 남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영화적 재해석이 가미된 작품입니다.

엄흥도의 역할

영화 속 엄흥도: 광천골 촌장으로 설정되어,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단종과의 깊은 교감과 변화하는 관계가 영화의 핵심입니다.

실제 엄흥도: 영월 호장(지방 아전)으로, 단종의 일상을 감시하는 보수주인 역할을 했습니다. 단종과의 구체적인 교감에 대한 역사 기록은 없으나, 단종 사후 삼족을 멸한다는 엄명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시신을 수습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유배 생활의 묘사

영화 속 단종: 광천골 마을 사람들과 교류하며 점차 삶의 의지를 되찾아가는 과정, 엄흥도와의 우정과 신뢰 관계, 마을 공동체와의 따뜻한 유대감이 중점적으로 다뤄집니다.

실제 단종: 청령포는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곳이었으며, 단종이 마을 사람들과 깊은 교류를 나눴다는 구체적인 기록은 없습니다. 단종은 청령포에서 관음송 나무를 말벗 삼아 외로움을 달랬고, 정순왕후를 그리며 망향탑을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영화적 재해석의 의미

장항준 감독은 "1457년 청령포, 역사가 지우려 했던 이야기"라는 콘셉트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공식 역사 기록에는 단종의 최후만 간략히 기록되어 있을 뿐, 유배 생활 동안의 구체적인 일상은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영화는 이 역사의 공백을 인간적인 시선으로 채워낸 작품입니다.

특히 엄흥도라는 인물을 통해 권력 투쟁의 피해자였던 단종을 한 명의 인간으로 조명하고, 역사의 변방에서 이름 없이 살아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까지의 관객 반응 및 후기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 왕과 사는 남자는 압도적인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네이버 평점: 9.65점 (10점 만점)

롯데시네마 평점: 9.8점

메가박스 평점: 9.5점

CGV 에그지수: 96% (100%에 가까울수록 호평)

누적 관객수: 100만 명 돌파 (2월 9일 기준)

관객 후기 모음

"오랜만에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 나왔다. 배우들 연기 미쳤고, 보면서 눈물 콧물 다 흘렸다. 설 연휴에 부모님이랑 같이 보기 좋을 것 같다."

"홍위도 울고 흥도도 울고 나도 울었다. 유해진 배우의 연기가 정말 압권이었다."

"꼭 흥행했으면 좋겠다. 정말 보고 나서도 여운이 남는 간만에 제대로 된 한국 영화."

"새롭게 느낀 어린 왕 단종에 대한 비애가 느껴지며,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겪는 수많은 고초가 가슴 아팠다."

특히 관객들은 유해진과 박지훈의 연기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유해진은 코믹한 촌장에서 충신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했고, 박지훈은 15kg 감량을 통해 단종의 피폐한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했다는 평가입니다.

영화의 주요 장면과 포인트

전반부 - 유배지 유치 경쟁

영화 초반에는 엄흥도가 마을의 부흥을 위해 청령포를 유배지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코믹하게 그려집니다. 노룻골 촌장과의 경쟁, 한명회를 만나 아부하는 장면 등이 웃음을 자아냅니다.

중반부 - 관계의 변화

단종과 엄흥도가 칡뿌리를 뜯어먹는 장면을 기점으로 영화의 분위기가 전환됩니다. 처음에는 감시 대상이었던 단종이 점차 한 명의 인간으로 다가오고, 엄흥도는 계산과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후반부 - 비극적 결말

금성대군의 복위 운동 실패 이후, 단종에게 사약이 내려집니다. 엄흥도가 단종의 마지막을 지키는 장면은 영화의 가장 큰 감동 포인트로 꼽힙니다. 특히 엄흥도가 줄을 힘껏 당기는 장면은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냈습니다.

영화 제작 비하인드

▪ 박지훈은 단종 역을 위해 15kg을 감량했습니다.

▪ 촬영지는 영월, 문경, 고령, 평창 등 국내 곳곳을 돌아다녔으며, 실제 청령포는 관광지가 되어 유사한 장소를 섭외했습니다.

▪ 장항준 감독과 유해진은 서울예대 선후배 사이로, 2002년 영화 라이터를 켜라를 촬영하면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 유지태는 한명회 역을 위해 관자놀이 테이핑으로 매서운 눈초리를 만들고 몸을 더 키웠습니다.

역사 속 엄흥도의 업적

영화 속 엄흥도는 허구적 요소가 많지만, 실제 역사 속 엄흥도는 충절의 상징으로 기억됩니다.

1457년 11월 16일, 단종이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한 후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엄명이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영월 호장 엄흥도는 이를 무릅쓰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암매장했습니다. 200년이 흐른 1516년(중종 11년)에야 봉분이 갖춰졌고, 조선 후기 숙종 때 단종이 복권되면서 영월 장릉에 모셔졌습니다.

엄흥도의 묘는 현재도 단종의 능인 장릉 근처 영월에 위치해 있으며, 영화 마지막 나레이션에서도 이 사실이 언급됩니다.

흥행 전망과 의미

왕과 사는 남자는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76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이는 2026년 주말 박스오피스 최고 스코어를 기록한 것으로, 설 연휴 한국 영화의 기대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2025년 한국 영화가 흥행 난조를 겪었던 점을 고려하면, 왕과 사는 남자의 성공은 한국 영화계에 긍정적인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관객들은 오랜만에 제대로 된 한국 사극 영화가 나왔다며 반가워하고 있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는 단순한 역사 영화를 넘어, 권력의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이름 없이 살아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를 새롭게 조명한 작품입니다. 특히 유해진, 박지훈, 유지태 등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가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는 현재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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